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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이야기

요한복음 18장 진정한 신앙의 용기

by 고윤맘 2022.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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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용기

용기란 무엇입니까?

용기란 무엇입니까? 용기의 정의는 '씩씩하고, 무엇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기세, 마음가짐'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겁이 없으면 용기 있는 사람입니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탐 크루즈라는 영화배우는 위험한 액션 장면을 대역 없이 촬영하기로 유명합니다. 더욱 실감 난 영화 장면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비만을 장착한 채 위험한 연기를 직접 해내는 배우입니다. 멋진 영화를 위해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는 이 배우를 사람들은 용감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탐 크루즈와 같이 똑같이 위험한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한때 초고층 빌딩의 첨탑 끝에 올라가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며 사진 찍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의 대부분은 불법으로 빌딩에 올라갔고,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기 위해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위험도로 따진다면 탐 크루즈보다 더욱 위험한 상황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사람을 용감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단순히 위험한 상황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기의 척도로 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위험한 일을 감수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자리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툼이 일어났을 때, 서로에게 먼저 '미안해'라고 말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성을 흠모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가 마음을 전할 때에는 심장이 터질듯한 마음을 이겨내고 마음을 고백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이를 품은  산모가 산통을 참아내며 새 생명을 낳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하겠습니까? 용기는 이렇게 여러 상황 속에 고려될 수 있는 성품입니다.

 

본문의 베드로는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대를 맞서 칼을 빼들고 예수님을 지켰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한 사람을 공격하기에 이릅니다. [요한복음 18장 10절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베드로는 군대를 맞선 용감한 사람일지 모릅니다. 자칫 자신이 더욱 위험해질 수 있음에도 그 위험을 감수하고 예수님을 지키려는 것이 아닙니까? 다른 제자들도 하지 못한 베드로만의 용기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핵심은 베드로의 행동이 신앙적으로는 용기라고 부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용기

용기를 가장한 혈기

우리가 용기와 쉽게 오해하는 성품 중 하나는 '혈기'입니다. 운동을 하다 언성이 높아질 때, 나를 향한 비난을 참고 있으면 마치 겁쟁이가 된 기분입니다. 참지 못하고 똑같이 상대를 향해 나의 감정을 불같이 쏟아놓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여지없이 경적을 크게 울려댑니다. 혈기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행동을 혈기라고 하고 용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혈기는 왜 일어납니까?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일어나는 분노입니다. 죄는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죄의 성품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혈기는 바로 사람 중심적인 죄의 열매가 드러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행동이 혈기와 똑같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생각, 베드로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일보다 자신의 일을 더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마태복음 16장 23절 …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보여줬던 용기는 사실 사람의 생각에 불과한, 죄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열매로 폭력을 행사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행동이 용기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는 바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예수님을 정말 지키고자 했다면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예수님을 지키는 것이 맞았을 것입니다. 성경의 에스더는 자신의 생명까지 사명을 위해 바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 4장 16절에 그 유명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고백하며 죽음을 각오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너도 제자가 아니냐'라고 물었을 때 세 번이나,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며 '나는 아니다'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8장 25절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신앙의 용기

신앙의 용기란 무엇인가?

세상적인 용기는 우리가 앞장서고, 상황을 주도하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신앙의 용기는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신앙의 용기는 '자기 부인'입니다. 나를 부인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나는 능력이 없다고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치욕스럽습니까? 우리는 신앙 앞에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라고 여기는 마지막 자존심을 남겨놓곤 합니다. 그런데 그것마저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비로소 예수님만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 없이 살아갑니다. 종종 남들이 하지 않는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을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하나같이 똑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가족을 지킬 수 없기에 이 일을 감내한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잃고 가족까지 잃을 수 없는 절박함이 그들로 하여금 위험하고 더러운 일, 자신의 체면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을 포기한 채 일을 감당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위해 죽음도 극복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마가복음 5장에 혈루증 앓는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정한 병을 앓는 사람이 군중들에게 나올 때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언제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군중 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습니까?

 

혈루증 앓는 여인은 자신의 능력 없음을 깨닫고 인정했습니다. 12년 동안 자신의 병을 위해 노력했지만 세상의 방법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나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은 이제 죽음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제 죽음을 앞둔 사람이 군중 속에 들어가 받게 될 비난과 멸시, 위험쯤이야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여인을 군중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 더욱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자신에게는 희망이 없지만, 예수님께는 희망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5:25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 일러라] 나를 포기하고 예수님께 희망이 있음을 보았기에 죽음도 각오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죽음뿐입니다. 희망 없는 죽음보다는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용기가 혈루증 앓는 여인을 회복시켰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믿음, 자신의 믿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죽을 수 있는 상황도 감내하며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용기가 그녀를 살린 것입니다. 신앙의 용기는 나를 포기하고 죽음으로 나갈 때 일어나는 용기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셨습니다. 칼을 빼어 든 베드로를 향해 '하나님께서 천사 군대를 보내 나를 지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며 꾸짖으셨습니다. 이어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한다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능력마저 포기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명도 포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대속 제물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온전히 자신을 부인하는 용기가 온 세상을 살리신 생명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용기

말씀 정리

세상의 용기는 숭고한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위험과 곤란한 처지를 이겨내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용기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입니다. 죽음까지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용기가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귀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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