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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이야기

골로새서 1장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것

by 고윤맘 202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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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것이 능력입니다

골로새서는 편지의 본론부로 접어드는 13절부터 23절까지 내용이 우리가 기독교 신앙 안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내용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다시 한번 기록하고 있습니다. 골로새교회에 유입되고 있는 그리스도 이외의 여러 가지 사상 때문이었습니다. 유대교 출신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할례와 같은 율법의 수단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또 이방 종교의 사상들, 특히 이단 사상중에 영지주의라고 불리는 영적인 것만을 중요시하는 무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과 죽음에 대하여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바울이 편지를 통해 골로새 성도들에게 말하는 것은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지폐 감별사와 인터뷰를 하는 내용 중에 공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위조지폐를 감별하는 감별사에게 인터뷰를 하면 이렇게 물었습니다. "위조지폐를 감별하기 위해 어떻게 훈련을 하나요?"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지 그리고 가짜는 어떻게 연구하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었습니다. 감별사는 "저는 가짜는 만지지 않습니다. 진짜만 잘 알고 있으면 가짜는 저절로 구별된답니다."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바울이 본문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믿음을 예쁘게 키워가고 있는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혼란스러운 다른 어떤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가 따라야 하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만 분명히 알면 된다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분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믿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한분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입니다. 기독교 안팎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참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런 말들을 들어보면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음성이 아니라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켜주려고 하다 보면 어느새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과는 많이 벗어난 자리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뜻에 많이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주님과의 관계보다 다른 관계를 먼저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세상과 잘 지내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과 친밀해지는데 힘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방법이 무엇인지, 예수님 믿는 사람이 누구인지, 예수님 믿는 사람의 삶의 방식은 어떻게 되는지, 예수님 믿고 성공한 사람은 누구인지,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예수님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 주변의 것들에 눈을 돌리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혼란이 다가올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말한 것과 같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 사람의 전통, 사람의 생각만으로 예수님을 가리지 마시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 구원자 예수님, 사랑의 예수님. 부활의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시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퍼져나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데에는 믿는 사람들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골로새교회를 위해 괴로움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사실 바울이 직접 골로새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괴로움을 받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대적들, 특별히 유대인들을 통한 괴로움을 많이 당하였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골로새를 포함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할 때에 바울의 육체에는 괴로움이 가해지지만 오히려 그것이 기쁘다고 표현합니다. 바울에게 괴로움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이방인들에게 더 많은 복음이 전해졌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수고는 힘들지만 기쁨을 가져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데에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수고가 담기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고난도 기꺼이 받는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울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각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세우려 함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한 영혼을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수고가 우리의 능력을 통한 수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수고의 일을 감당할 능력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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